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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탄 오연석씨(左)가 이경화씨와 함께 라틴 댄스 중 한 종목인 룸바를 추고 있다.

"짜자잔 짠짠 짠짠짠~짠." 서울 구로구 구로3동의 이춘식 댄스스포츠 아카데미. 60평이 넘는 플로어에 탱고 음악이 흘러넘친다. 두 명의 댄서가 춤을 추고 있다. 격정적 몸놀림, 쏜살같은 턴. 하나이면서 둘, 둘이면서 또 하나인 이들의 몸짓이 놀랍다. 더욱 놀라운 건 여성 댄서다. 그의 발목에는 분홍색 댄스화의 리본이 곱게 매여 있다. 그러나 바닥에 닿진 않는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손으로 바퀴를 밀고 당기며 스텝을 밟는다.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 중 국내에 한 명뿐인 여성 댄서, 오연석(46.사무직)씨다.

오씨가 팔을 쭉 내민다. 남성 댄서가 미끄러질 듯 다가온다. 서로 손목을 잡는가 싶더니 휠체어의 왼쪽 바퀴가 번쩍 들린다. 그리고 빙그르르 돈다. "와~아!" 주위에서 탄성이 터진다. 오씨의 '스탠딩 파트너'는 이경화(40.하이닉스반도체 환경안전팀 과장)씨. 그는 장애인이 아니다. 회사에선 '댄스 리'로 통하는 경력 10년의 댄스스포츠 선수다. "휠체어를 타고 하는 농구나 탁구, 배드민턴 등은 장애인끼리의 스포츠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어울리는 스포츠는 휠체어댄스(휠댄스)가 유일해요." 이씨의 말이다.

두 사람은 10월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국제장애인올림픽(IPC) 휠댄스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사표를 던졌다. 세계 최고 대회다. 휠댄스의 강호인 폴란드를 비롯, 동유럽에서도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다. 이씨는 "목표는 물론 우승"이라고 말한다.

오씨가 자신의 장애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 입학식 때였다. "'좌향좌, 우향우'를 하는데 저만 전봇대가 됐어요. 발가락이 들리지 않더군요." 스무 살이 넘어서야 정확한 병명을 알았다. 진행성 말초신경 마비. 그는 지금 지체장애 1급이다. 다리는 갈수록 감각이 없고, 손과 팔의 힘도 약하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휠체어 장총 사격을 배우다 포기했죠. 힘이 약해 손이 자꾸만 떨려서요. 수영도 팔로만 해야 했죠." 그러다 휠댄스를 만났다. "한 곡을 추는 데 1분30초예요. 차차차.룸바 같은 라틴 댄스는 한 곡만 춰도 등에 땀이 쫙 흘러요. 휠체어 타고 히말라야를 넘는 기분이죠."

가족도 처음엔 온통 걱정이었다. "춤바람이 났느냐"며 몰아세우기도 했다. 휠댄스를 배운 지 1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 댄스스포츠 대회의 개막 축하 공연이었다. 반대가 심했던 언니의 눈에서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경화씨가 오씨의 춤을 처음 본 것도 그날이었다. 당시 이씨는 대회 채점관리위원장이었다. "무대에 휠체어가 올라오는데 '저게 뭐지?' 싶었어요." 오씨의 춤을 보곤 입이 쩍 벌어졌다. "그토록 가슴 뭉클한 춤은 본 적이 없었어요." 특히 휠체어의 앞바퀴를 들고 뒤로 젖히는 '윌리 턴'이나 파트너와 휠체어를 동시에 눕히는 고난도 기술은 현란할 정도였다.

이씨는 곧장 휠체어댄스에 입문했다. "처음에는 '봉사한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완전한 댄서끼리 만나 '같이' 춤추는 것. 거기엔 '휠체어 파트너'와 '스탠딩 파트너'만 있을 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는 없었다.

올 2월 이후 두 사람은 크고 작은 국내 대회를 휩쓸었다. 4월에만 장애인 스포츠대회 두 곳에서 대상을 받았다. 시아버지에게 "남편이 춤에 빠졌다"며 고자질까지 했던 이씨의 아내도 휠댄스를 본 뒤에는 가장 열렬한 후원자가 됐다.

이들의 연습실은 3층,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난간도 없다.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내려오던 오씨는 "우승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계단도 바뀌겠죠"라며 활짝 웃었다.

[중앙일보]